우리는 로빈슨 크루소가 아닌 사회적 동물이기에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와 우리 자신을 잊고 지내는 것은 아닐까요?
1. 없어보이면 안되는 더러운 세상...
2. 대학생인 내가 불특정 다수의 시선을 느끼는 순간
3. 3인 3색 칼럼, 어른들에게 고함
타인의 시선이 그저 시선에만 그친다면, 입안의 가시처럼 껄끄럽진 않겠죠.
우리가 타인의 시선에 이토록 신경쓰는 이유는 타인이 만들어낸 기준에 따라 탐색기에 걸러지듯
우리의 머리부터 발 끝 그리고 밟아온 발자취들이 평가받기 때문입니다.
외모, 성격, 몸가짐, 학벌, 능력 등등등.. 하나씩 열거하기조차 힘든 기준들이
때로는 매우 엄격하게 우리의 행동 반경과 무의식을 점령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그 기준을 만들어낸 '타인'이란 과연 누구일까요?
아래의 세 칼럼은 그 '누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른들에게 고함 #1 _ 인생의 기준은 바로 내가 만들어 가는 거야!!
띠볼매니아 (박정민)
오늘도 어김없이 학교에 가기를 위해 옷을 입는다.
매일 매일 갈아 입어야 하는 옷이기에 신경을 쓰며 입었다가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부모님 목소리에 몸을 움츠르게 된다.
"학생답게 입어야지 멋을 내고 그러니? 단정하게 입고 다녀"
수년간 듣는 이말이 이에 지겨워 미칠 지경이지만 부모님은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 말씀하신다.
부모님의 의견을 무심코 넘긴다면 어떤 보복조치가 따를지도 모른다.
평생동안 내 인생을 내 맘대로 살아오지 않았으니 어쩔 도리도 없다.
사사건건 나를 관리하시던 어머니는 이제 내 취업도 직접 관리하신다.
"만수야!!!! 웃어야지. 그렇게 인상 쓰고 다니면 누가 뽑아주겠어.
요즘에는 인성을 본다던에 외모나 취향도 저는 인성이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로 고치도록 해"
어찌해야 하는가? 난 나인데 다른 이로 변하라고 하니 정말 막막할 따름이다.
기성세대에 맞추기 위해 나를 숨겨야만 했던 적이 한 번쯤 있었을 것이다.
남보다 적게 일하면서 많이 벌며 사회적 지위가 있는 직종을 찾아 헤매다 보니
다른 사람보다 나아보이기 위해서 각종 변신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잘 보이려는 욕구가 반영되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보단 어른들이 보기에 좋고 안정적인 곳으로 향하다 보니
대학생들이 개성을 잃고 있으며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지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기성세대는 말 할 것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어. 좋은 직장 다니면서 잘 살길 바랄뿐인거지"
그러나 그말에 학생들은 부담감을 가지고 곧잘 비교되는 대상으로 인해 더욱 처참함에 빠지곤 한다.
어떤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지만 어른들이 갖은 생각 자체가 하나의 기준이 되어 다가온다.
좋은 직장을 다니며 잘 사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이 행복을 느낀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곧 잘사는 것이 아닐까?
행복의 기준은 동일할 수 없는데 이를 규격화하려는 시도가
행복한 삶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기준을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20대의 대학생들에게 인생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더 이상 내가 없는 허무한 인생보다는 나를 위한 충만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 출발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을 없애고 사회를 변화해 나갈 것이다.
대학생들이 취업을 하고 나이를 먹어 그들이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자신들의 자녀에게 어떠한 기준도 제시하지 않는 출발점이 바로 지금이다.
어른들의 기준을 떠나 진정한 행복을 찾아서 여행을 떠나야 한다.
어른들에게 고함 #2 _ 왜 우리 모두가 엄친아여야 하는데?!
ddackse (문지은)
내가 좋아하는 소설책을 구입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서점으로 향한다.
수많은 베스트 셀러들이 서점 입구부터 펼쳐져 있고
신간소설과 비소설들이 즐비하게 놓여져있다.
내가 좋아하는 책, 내가 읽고 싶은 책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밟히는 책 한권이 있다.
그 책은 서점 가장 가운데 위치해 있으며 그 제목은 바로 '엄친아 따라잡기'이다.
엄친아? 엄친아의 뜻은 모두들 알고 있듯이 '엄마 친구 아들'의 줄임말이다.
공부,운동,외모 모든게 잘나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특히 엄마가 부러워하는 인물을 말한다.
엄마들의 부러움은 비교로 이어지며 비교 당하는 모든이들의 머리를 쥐어뜯게 만든다.
어느 순간부터 세상은 그리고 우리 세대들은 '엄친아'라는 단어를 바라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과 비슷한 삶을 살기위해 그리고 따라잡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저런 삶을 살지 못해 손가락질을 받거나 수근거림을 받을까 두려워 하고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 봐야할 것이 있다.
대체 누가 만들어 낸 것일까?
왜 우리는 어느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엄친아'라는
어처구니 없는 기준에게 비교를 당하고 있는 걸까?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에 합격하고,
토익/토플은 이미 적정수준에 놓여져 있고,
훈훈한 외모를 유지하며 특출나게 잘하는 운동 하나에
그 외의 운동도 전부 마스터한 완변학 삶.
여기에 언어 연금술사 같은 화려한 프리젠테이션 실력과
3학년이 되기도 전에 쌓여진 스펙까지...
이렇게 정해진 '엄친아'의 삶이 우리 모두가 꿈꾸는 그런 삶일까?
'엄친아'의 삶은 바로 기성세대들이 꿈꿨던 그리고 바라는 '성공하는 삶'의 기준이 아닐까?
우리는 인생의 가치와 목표를 저마다 다르게 꿈꾸고 있다.
또한 우리가 만들어 가고 있는 인생의 인생상은 사람마다 확연히 다르다.
'난 공부하는 것보다 사진찍는게 더좋아, 매일매일 사진만 찍고 싶어',
'난 세계 최고의 자동차 정비소를 갖는게 꿈이야',
'내 삶의 최고의 가치는 사랑이야',
'대학은 학점보다 친구들과 좋은 추억을 만드는게 최고야.'
위에 말한 여러가지의 생각 중 과연 틀린게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잘못된게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살고 싶어하는 인생은 다르고 그 인생을 평가하는 기준 또한 다른데
왜 기성세대는 우리의 삶을 그들 마음대로 하나로 묶어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는 걸까?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알려 하지 않으면서
왜 하나같이 같은 인생을 살길 원하는 걸까?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삶이 있고 인생이 있다.
모두가 '엄친아'가 되어야 하는 삶과 인생은 우리의 것이 아닌 타인의 것이다.
그들의 시선에 맞춰가기 위해 왜 모두 '엄친아'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오늘도 우리가 '엄친아'와 같은 길을 걷길 바라며 우리를 바라보는 모든 어른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삶은 그 누구의 삶보다 가치있고 귀중한 나만의 것이라고 말이다.
어른들에게 고함 #3 _ 우리문화는 찌질이문화가 아니야!!
달보드레:P (김서영)
나를 포함한 요즘의 대학생들은 서슴없이 자신을
'잉여인간', ‘찌질이’ 내지는 '폐인'이라고 평가절하하곤 한다.
사전적 의미를 생각해보면 사실 스스로를 또는 누군가를
‘잉여’, ‘폐인’, ‘찌질이’라고 부르는 건 과도한 잣대다.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지칭하는 건 왜일까?
편한 예를 그냥 하나 들자면, 나는 휴학생이고 컴퓨터를 좋아하며,
공부하고 스펙을 쌓는 것엔 이상하리만치 느긋하다.
그래서 하루종일 집에서 쉬었던 날이면
자주 방문하는 커뮤니티에 ‘하루 종일 잉여잉여거렸다’고 쓴다.
그 아래에는 댓글이 몇 개씩 달린다. 전부 ‘나도 그랬다’는 내용이다.
아마 그 날 잉여짓을 했다고 주장하는 대학생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어제, 혹은 내일, 좀 더 먼 어느날에
자신을 위해 시간을 투자할 계획이 있거나
블로그를 비롯한 다른 수단을 이용해 소셜 네트워킹에 참여했거나
컴퓨터 능력을 적극 활용하여 어떤 결과물을 웹상에 올렸을 수 있다.
누군가는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런게 바로 잉여 생활 아니냐고.
스펙을 쌓지 않고, 자신을 발전시키지 않은 채
하루를 무참히 보내버린 것이 찌질하다고 말이다.
우리는 매일 같이 허공에 뜬 라퓨타처럼 멀고 확인되지 않은
어떤 기준점을 향해 두 팔을 뻗어 휘적이고 있다.
그곳에 닿기 위해 우리는 획일적으로 한 곳만을 집중하고 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같은 시선을 강요하고 공유하려하고
심지어는 자신 스스로를 끼워맞춰 그 안에 들지 않으면
'잉여', '폐인', '찌질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틀이란 다름아닌,
이미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안정적인 지위를 확보한
기성세대들에 의해 제공된다.
일종의 우월 의식을 갖고 있는 기성 세대들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젊은이가 '잉여'이고 '폐인'이며 '찌질이'다.
우리의 시선에는 이러한 기성 세대의 시선이 철저히 반영되어있으며
그것이 우리 스스로를 다시 얽매고 있다.
우리와 기성 세대는 다른 사람들이고 우리 서로도 각자 다른 사람들이다.
우리에겐 스스로를 정의내릴 수 있는 권리가 있고 그만큼의 자율적인 생각이 있다.
휴학, 백조문화, 배낭여행, 인터넷 문화 등은 '찌질이 문화'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문화적 현상이며 시대의 투영이다.
우리는 충분히 우리의 문화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
블로깅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가 지금의 기성 세대가 만들어내지 못한 우리 세대의 새로운 모습이지만,
이제는 사회의 중요한 수단이되어 우리의 능력이 된 것처럼 말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우리의 인생.
많은 사람들은 그 인생을 타인의 시선에 맞추기 위해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고 애쓰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그리고 내가 만들어 가는 인생인데 왜 우리는 이토록 타인을 신경써야 할까요?
타인의 머리속에 그려질 내가 살고있는 인생의 평가때문일까요?
우리 모두는 그 누구의 인생을 두고 옳다고 잘못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자격이나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설령 우리보다 오랜 경험을 가지고 살았다 해도 내가 살고 있는 인생을 평가할 수는 없죠.
그들의 살아왔던 세상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비슷함 보단 차이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답은 하나입니다.
"너의 인생은 바로 너의 것!
그러니 제발 그 누구의 시선 따위 신경말고 네 마음대로 모든지 해라.
그게 바로 네가 바라던 그 답이다."
Posted by 박정민(ddivol@naver.com), 문지은 (ddackse@naver.com), 김서영(sy2hoyo@naver.com)
From 써니블로그 에디터그룹 스마일써니 http://blog.besunn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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