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3일, 강원도가 들썩인다.
원주 시외 버스 터미널 앞에 한 무리가 성큼성큼 다가온다. 한손에는 북을 들고 오는 이도 있었고 또 다른 이는 도마를 가슴팍에 안고 온다. 앞도 안 보일만큼 커다란 박스를 안고 걸어오는 여자 써니 하나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건다.
"안녕하세요. SKT 대학생 자원봉사단 강원도 해피바이러스 입니다."
그들과의 만남,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날 것, 그 자체이다. 1박 2일 해피 바이러스를 위해 숙소로 이동하는 길, 좁은 자동차 안에 겨우겨우 모두 몸을 싣고도 짐에 치여서 움직일 수도 없어도 누구 하나 불편하다고 불평불만이 없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달려도, 커브길에 몸이 쏠려도 오히려 그들은 즐기며 까르르 웃음을 터트린다. 강원도의 맑은 기를 받고 자란 아이들이라 그런가, 솔직담백하다. 투박하다는 느낌, 자기 포장이 없어서 좋다.
"그래. 내일 아가들 공연하러 간다고?"
"네, 굿네이버스로 해피바이러스 공연하러 가요. 연극도 하고 난타공연도 할꺼에요."
"낳자마자 버려지고 피붙이에게 맞고 상처 많은 애들이지. 괜히 가서 불쌍하다고 어설프게 안아주고 정주고 다음에 또 온다고 거짓말로 약속하고 그러지 말어. 애들 어려서 진짜로 기다려. 괜히 더 상처 받어."
그 지역 토박이, 이웃집 숟가락 숫자까지 안다는 시골 아저씨, 숙소 주인 아저씨가 몰고 가는 봉고차에서 아저씨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가슴을 울려댄다. 정에 굶주린 아이들, 부모품의 따스함보다는 세상의 차가움을 먼저 배운 아이들, 그 아이들의 눈을 내가 감당해 낼 수 있을까 덜컥 겁부터 난다.
'그 아이들에게 실망주고 싶지 않아! 밤샘 연습뿐!'
도착한 숙소 앞, 한참을 차를 타고 들어온 산속에 위치한 숙소. 차에서 우르르 내리자마자 아이들은 허리를 돌리고 어깨를 돌리면서 스트레칭을 한다. 그런 우리들을 보고 강아지가 컹컹 짖어댄다. 모두들 차에서 짐을 끌어내리고 하나씩 걸쳐 메고 4층 숙소까지 올라간다.
생각보다 좁은 숙소의 크기에 아이들 얼굴에 난감함과 당혹감이 어린다. 숙소가 좁아서 생활하기 불편해서 그런가 하고 짧고 어린 생각을 하는 나를 흠칫하게 하는 목소리가 곧 이어 들려온다.
"이렇게 좁아서 연습 어떻게 하지? 난타랑 춤이랑 연극 연습 하려면 역부족인데."
"난타는 그러면 방에서 문 닫고 할께, 치어리더 연습은 거실에서 유리창 보고 연습하면 되겠다. 연극은 내가 주인 아저씨한테 부탁해볼께."
"그래야겠다. 어서 짐 풀고 연습하자."
생각보다 작은 숙소에 연습 걱정부터 하는 그들은 역시 프로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모이자마자 기획회의를 하고 악기를 꺼내고 춤 연습을 하고 연극 연습을 한다. 도대체 이들을 움직이는 에너지의 원천은 무엇인가?
“아이들을 실망 시키고 싶지 않아요. 열심히 연습하지 않아서 허접한 공연이 되면 싫어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 노력했다는 것 보여주고 싶어요.”
굿네이버스에서 아이들을 위해 내일 열릴 공연을 위해 그들이 구슬땀을 흘린다. 끊임없이 오가는 토론과 연습 속에 그들의 진지함과 아이들의 신뢰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라면, 다른 무언가를 위해서 저들이 저렇게 움직이는 것이라면 저런 표정이 나올수가 없다.
몰입, 그들의 표정에서 읽히는 그 단어는 아이들의 가슴에 난 상처를 조금이나마 자신들의 공연으로 아물게 해줬으면 하는 간절함이었고 세상에 대한 어린 가슴이 닫힐까 걱정하는 조바심 어린 마음이었다.
"최종 리허설, 열두시에 아래층에서 모입니다. 난타팀, 연극팀, 치어리더팀 모두 강당으로 내려와 주세요."
최종 리허설 현장, 난타, 치어리더, 연극팀이 차례로 실전처럼 연습을 각 지역 써니들 앞에서 선보인다. 30분 가량의 공연이 모두 끝나고 서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오고 간다. 최종 리허설이 끝나고 방에 다시 돌아온 그들은 밤 깊은 줄 모르고 충고를 밑거름 삼아 더 좋은 공연을 위해, 그들은 늦은 밤까지 잠을 이루지 않고 더 완벽한 공연을 위해 연습을 하고 손을 맞추고 발을 맞춘다.
'이 사람들, 너무 멋지잖아.'
스무명 남짓한 써니들이 한 공간에 모여 만들어내는 그 분위기와 땀냄새와 열정과 눈빛. 내가 살면서 어디를 가면 이런 멋진 사람들 또 다시 만날 수 있게 될까.
'상처 받은 어린 아이들의 눈망울과 마주하다'
굿네이버스에 도착해 급식소 앞에서 점심을 먹고 물을 마시는 아이들과 마주한다. 생각보다 훨씬 작은 아이들이다. 눈이 마주치자 부끄러운 듯 숨어버린다. 조금 머리 굵은 초등학교 다닌다는 녀석이 공연보러 오라는 말에 "공연 재미없어요. 그런 거 안가요.”하며 볼멘 목소리로 내지르고 아이들 손을 잡고 쌩하니 가버린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 받았기에 저렇게 모질어졌을까.써니들 얼굴엔 당혹감과 함께 안쓰러움이 스쳐지나간다.
"열심히 했잖아. 마지막까지 열심히 하자. 최선을 다해야지."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다잡아 준다. 손에는 북채를 쥐고 , 대본을 쥐고 더 바쁘게 연습에 열을 올린다. 무대를 꾸밀 풍선을 불고 아이들 손에 쥐어줄 풍선꽃도 만들고 풍선칼도 만든다.
'써니 선생님이랑 짝궁할래요?'
아이들과 마주하는 시간, 선생님 손에 이끌려 온 아이들이 쭈뻣거리면서 서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서있는 아이, 입에 손을 물고 가만히 서 있는 아이, 등 뒤에 숨어버리는 아이.
써니들이 다가가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추고 말을 건다.
"오늘 선생님이랑 짝꿍할래요?"
아이들과 가위질과 풀칠을 하면서 장난감을 만든다.
엄마 아빠가 있는 집에서 사랑 받고 책 한권을 혼자 다 만들어 볼 아이가 있는가 하면 이 아이들처럼 서로 양보하는 법, 나누는 법, 기다리는 법- 자연의 약육강식을 먼저 배운 아이들도 있다. 힘센 아이가 종이를 고르고 쪼르르 써니들의 무릎에 앉고 나면 “아무거나 좋아요”하면서 입속에 손가락을 물고 우물우물 말하며 묻는 말에 끄덕 끄덕 고개로만 대답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 아이들의 손에 가위를 쥐어주고 자르는 법을 가르쳐준다. 풀칠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써니와 함께 만든 종이 장난감 하나에 미소꽃이 핀다. '이래서 써니들이 열심히 했구나. '어제의 써니들 마음이 이해가 간다. 가위질 하나에, 풀칠하나 작은 움직임 하나 놓치지 않고 따라오는 작은 눈망울, 그리고 내 무릎에 앉아 가슴팍으로 느껴지는 아이의 작은 숨소리와 심장소리가 어제 아저씨의 말과 겹쳐진다.
정에 굶주린 아이들, 그렇기에 상처주고 싶지 않다. 실망도 시키고 싶지 않다. 스무살을 넘긴 내가 살아가기에도 세상은 차갑고 상처는 버거운데 이 어린 아이들의 여린 살결로 어떻게 그 바람을 다 막아낼까 안쓰럽다.
'이제부터 해피 바이러스 감염 시작!'
몇주간 열심히 준비했던 공연이 펼쳐진다. 어젯밤 조언대로 크게크게 손발 동작을 쭉쭉 뻗는다. 아이들의 작은 손바닥으로 만들어내는 손뼉 소리에 기운이 나 하늘을 날아갈 것 처럼 힘이 나는 써니들이다.
뒤이어 난타 공연이 시작된다. 엉덩이를 들썩대며 써니들 무릎에 앉아 구경을 하며 박수를 치고 풍선을 흔드는 아이들. 난타공연이 끝나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완성되는 공연이 시작된다. "앞에 나와서 북치는 거 배워볼 친구?"클론의 월드컵 노래에 맞춰서 아이들의 작은 손에 북채를 쥐어주고 북을 친다. "이렇게 하면 멈추는 거고, 이렇게 하면 왼손, 이렇게 하면 오른손이에요." 작은 손들이 노래에 맞춰 음악을 만들어낸다. 음악으로 한마음으로 묶이는 기분이다.
"나는 무서운 호랑이. 누굴 먼저 잡아먹을까? 토끼? 고양이? 개구리? 어흥"
연극이 시작되고 아이들 입에서는 웃음이 쉴새 없이 튀어나온다. 호랑이 옷을 입은 써니의 어흥 소리에 까무라치면서 "선생님"하면서 울먹거리면서 짝꿍써니에게 안긴다.
앞에 나가서 연극하는 개구리 분장을 한 써니가 손을 흔들어 주자 꼬맹이 하나가 신이 난다. “개구리는 내 선생님이야” 앞에 나와 연극을 하는 써니에게 “선생님”하면서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들며 친구들에게 자랑을 한다.
연극을 하는 내내 예측불허의 아이들의 엉뚱한 대답과 연극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동물 친구들을 괴롭히는 호랑이를 무대위에 올라가서 때려주는 아이가 있어 웃음이 터졌던 잊지 못할 연극이었다.
'아이의 작은 새끼 손가락, 다음을 약속하다.'
짝꿍 써니들이 아이들을 안고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는다. 아이들 손에 폴라로이드 사진을 쥐어준다.
"아이들 자라는 것 사진으로 찍어서 남겨줘야 하는데, 이 아이들은 사진 찍어줄 사람이 없잖아요. 그래서 아이들 찍어주는 거에요. 우리들을 기억 못하고 오늘을 기억 못한다고 해도 괜찮아요. 오늘 웃고 행복했다면 그것으로 된거에요. 폴라로이드 사진은 세상에 한개뿐이 없는 사진이잖아요. 세상에 유일한 존재,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모든 공연이 끝나고 아이들과 마주한다. "선생님 가야해요? 가지말지." 이렇게 쉽게 정들고 마음 주는 어린 아이들, 상처 받을 새라 다음에 또 오냐는 말에 새끼 손가락 걸고 약속을 하고 만다. “ 봉사란 중독 같아요. 아이들 눈망울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내가 또 상처주고 실망시키는 또 하나의 어른이 될까봐. 그게 겁이나요. 다음에도 또 찾아올꺼에요. 오늘 그랬듯이” 써니들의 눈빛에 책임감이 읽힌다.
해피바이러스, 그들은 바이러스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웃음으로 감염시키는 그들은 바이러스이다. 가슴에 난 상처를 웃음으로 아물게 하는 그들은 변종 바이러스이다. 자가증식을 게을리하지 않는 바이러스처럼 그들은 오늘도 끊임없이 해피 바이러스를 전파한다. 마른 얼굴에 퍼지는 웃음꽃에 중독되어 오늘도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그들은 학계에 보고 되지 않은 강력한 바이러스이다. 인간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먹고 사는 그들은 세상이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세상을 감염시킬 것이다.
Posted by 정지현(bg1029@naver.com), 김선영(cu2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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