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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하는 대학생, 게릴라 가드닝

눈 뜨자마자 5.3인치 HD슈퍼아몰레드 디스플레이를 시야에 비춘다. 이어폰으로 귓구멍을 틀어막으면 외출준비 완료.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어두운 지하 소굴로 입장한다. 반찬통같은 지옥철에서 영역다툼을 하다가 물 밀리듯 밖으로 튕겨져나오면 획일적인 네모세상이 늘 보던대로 우중충하게 서있다.


 

회색 빛 네모세상 속 초록빛 한줌을 찾아

 

 

늘 지나치는 주변을 새삼스레 다시 둘러보자. 콘크리트 건물, 쭉 뻗은 도로, 온통 규격화되고 디지털화된 콘텐트들…획일적으로 정돈된 무채색 세상 속에 살다 보니 마음까지 색을 잃고 딱딱하게 굳어버릴 것 같다.

 

‘에코, 로컬푸드, 도시텃밭, 지속가능성’

요즘들어 그린 키워드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현대인들이 그린에 결핍되어 있다는 증거를 보여준다. 황폐화된 도시환경에 뻐끔대던 도시인들이 점차 초록빛 세상 위로 입을 내밀기 시작한 것이다. 도시와 결합된 자연은 농촌틱한 촌스러움을 벗고 스타일을 입었다. 도시에서 자연은 치유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놀이이자 문화가 되기도, 나아가 공동체를 만들고 메세지를 전달하는 운동적 성격을 띄기도 한다.

여기, 인식하지 못 할 만큼 도시배경과 하나된 현대인들 사이에서 색을 찾고자 꽃으로 투쟁하는 운동적 성격의 대표주자들이 있다. 그 이름 하야 ‘게릴라가드너’

 

우리는 꽃을 들고 싸운다. ′게릴라가드닝′

 

‘게릴라’는 ‘일단의 무리가 비정규적이고 비조직적인 방식으로 수행하는 유격전’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혁명가 체 게바라의 게릴라전이 연상되는 이 거친 단어가 정원을 가꾸는 평화로운 행위를 의미하는 ‘가드닝’이라는 용어와 어울릴 리 만무하건만, 이 두 용어가 결합해 한 단어가 되었다고 하니 안 궁금할 수가 없겠다. 공공의 측면에서 게릴라가드닝은 <본인의 소유가 아닌 땅에 허가 받지 않고 꽃을 심는 불법적인 행위>를 말한다. 그러나 게릴라가드닝은 ‘불법경작’이란 못된 단어로 정의 짓기엔 또 너무나 공공적인 행위이다.

 

게릴라 가드닝, 위험하면서도 재밌는 아이디어이다. 법의 테두리 밖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위험하면서도, 사회적 메세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상황에 따라서 용인될 수도 있는 운동이기 때문에 새로우면서 재밌다. 지금까지의 공원들이 큰 상위 계획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구체화된 결과물이라면, 게릴라 가드닝은 작은 의지들이 모여서 공간을 점유하고 정원을 꾸미기 시작해서 위로부터 인정을 받는 형태이다. 혁명에 비유하자면 위로부터의 혁명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혁명인 것이다. 그야말로 풀과 나무를 들었을 뿐 게릴라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_게릴라가드닝(저 리처드레이놀즈) 중에서

 

 

집 앞 공터나 길가에 몰래 꽃을 심는 조금은 독특한 취미를 가진 영국의 평범한 회사원, 리처드레이놀즈에 의해 2004년 조직된 게릴라가드닝은 웹사이트(guerilla-gardening.org)를 타고 퍼지기 시작해 전세계 30개국의 게릴라가드너들이 함께하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되었다. 도심 속에서 꽃과 식물로 전투를 벌이는 그의 일당들은 콘크리트와 시멘트 사이, 잡초가 우거진 도로변, 버려진 황량한 땅, 쓰레기가 넘쳐나는 황폐화된 도시공간을 남몰래 초록빛으로 물들인다. 오염되고 버려진 도시 한 귀퉁이가 어느 날 노란 꽃잎을 활짝 편 해바라기 정글로 변한 것을 바라 보며 ‘불법’을 논할 지역주민이 몇이나 될까.

 

 

게릴라가드닝은 지역경관을 아름답게 가꾸어가는 공동체적 활동일 뿐만 아니라 자연을 생각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계획되는 도시개발에 대항하는 하나의 사회적 실천운동이기도 하다. 공공장소를 무시하고, 흉물스러운 도시 한 구석을 무관심하게 바라보는 세력과 맞서 싸우는 게릴라가드너들은 그래서 이를 ‘전쟁’이라 부른다. 다만 그들이 든 것은 총과 칼 대신 더욱 강력한 꽃과 삽이다.

 

애니팡 대신 시드팡! 삽질하는 대학생

 

그리고 나도 이어폰을 뽑고 휴대폰을 놓고 두 손에 꽃과 삽을 들기로 했다. 이 아름다운 전쟁에 참전하기로 한 것이다. 출격에 앞서 나홀로 용사이자 사령관으로서 치밀하게 작전계획을 세웠다. 가장 먼저 할 것은 장소물색! 장소를 정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들 하지만 나에겐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써니룸(신촌 창전동 구석퉁이에 위치) 주변 골목에 안방마냥 떡하니 터를 잡고 있는 적군들의 쓰레기폭탄이 평소에도 몹시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무단투기금지’라는 큼직한 글귀와 함께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는 부엉이의 위협이 먹히지 않았다면, 작은 꽃 한 송이로 허를 찔러 적군의 마음을 흐물하게 만들어 버릴테닷!

 

 

2012/10/28
11:50am 출격당일

꽃집 아가씨 룩으로 무장하고 홍대 꽃집에 들러 무기를 장전한다. 금방이라도 캐롤이 울릴 것 같은 붉은빛 ‘포인세티아’는 곧 다가올 겨울시즌을 겨냥한 야심찬 감성무기다. 그 옆에서 우직하게 서브를 담당할 ‘다육이’들은 2종류가 번갈아 배치되어 적의 교란에 한 몫 할 것이다. 작전명은 ‘규칙과 불규칙 사이에서’. 마치 순수미술 작품의 이름 같기도 하나 얕보면 큰 코 다치는 수가 있다.

 

 

12:10pm 기지도착
위험하게도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행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좀 더 안전을 기했어야 했었는데, 꽃집 아주머니의 포장법이 투명비닐봉지였다는 것을 신경 쓰지 못한 나의 불찰이다. 무기를 드러내고 다닌 꼴이라니. 하지만, 그 시선을 즐겼던걸 보면 나는 꽤나 대범한 용사인가보다.
목적지 뒤에 자리잡은 기지(써니룸)에 도착해 비장한 마음으로 고무장갑을 끼고 페트병을 잘라 모종삽을 만들었다. 색색깔의 페인트마카 총알도 챙겼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줄 파견용사 조수연써니도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한결 든든하다.

 

 

12:20pm 목표지점 습격
밝은 대낮이므로 신속한 스피드가 작전수행의 관건이었다. 먼저 적군이 설치해둔 쓰레기폭탄을 드러내고(뒷모습이 영락없는 할머니다.) 구덩이를 파 무기들이 자리잡을 건강한 흙을 옮겨주었다. 그리고 아기를 다루듯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화분을 벗겨 작전대로 꽃을 배치했다. 자갈돌로 게이트를 치고 ‘사랑텃밭’이란 감성소구 명패를 꽂아 마침내 영역점거까지 클리어- 배후에 위치한 공사장 벽에 마카총알을 마구 쏴대어 배수진을 능가하는 배마카진을 침으로써 이 전투의 승리를 확실히 다졌다.

 

 

12:40pm 작전종료

20분만에 작전을 완료했다. 기대 이상의 성과다. 그러나 그 사이에 5명 남짓의 신촌이웃주민들에게 노출되고 말았다. 그 중 한사람이라도 쓰레기폭탄을 심는 적군이라면 위험한 일이나 그들의 얼굴에 번진 미소를 읽었으므로 큰 걱정은 없다. 지속적으로 작전영역을 주시해보아야 겠다. 

 

 

꽃밭본능을 깨워라

흙을 만진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마치 동네 화단에서 흙으로 주먹밥을 만들며 소꿉놀이를 하던 어릴적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 이랄까. 푹신한 최고급의 가죽소파도 그립지 않았고, 형형색색 현란한 영상들로 눈을 빼앗는 TV나 실시간으로 친구들과 수다를 떨 수 있는 휴대폰도 생각나지 않았다. 언제부터 흙 만지기를 기피하고 풀보기를 풀보듯, 돌보기를 돌보듯 했는지 몰라도 (관습어가 우리의 현재를 보여준다.) 좀 더 작은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쭈그려 앉는 순간 행복이 빼꼼 찾아왔다. 물론 누군가에겐 여전히 이해가 안가고 손발이 오그라들 말일수 있으나 나는 안다. 모두에겐 자연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꽃밭본능’이 있다는 것을.

 

 

게릴라가드닝 이후 써니룸을 들를 때 마다 자그마한 나의 사랑텃밭으로 향한다. 가는 길마저 신나고 설레는 내 자신이 웃기기도 하다. 아직까지 주변에 쓰레기 한 점 보이지 않는걸 보며 뿌듯해 한 것도 유치하지만 고백한다. ‘오늘은 누가 이 앞을 지나가며 미소를 지었을까?’ 물을 먹이며 쭈그려 앉아 생각하다 인기척에 후다닥 일어나 길을 되돌아온다. 입가에 번지는 미소는 어쩔 수 없다.

 

남몰래 느끼는 바로 이 즐거움에 세계 곳곳의 게릴라가드너들은 오늘도 삽질을 한다.

뒤에서 즐거움을 맛보며 삶을 더욱 싱그럽게 가꾸고 싶다면, 지금 삽을 들고 밖으로 나가보자.

몰래,

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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