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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우리는 또 한 번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서울 강북구 아파트의 경비원 최희석 씨가 입주민의 폭언 및 폭행에 시달리다 자살을 택했다는 뉴스였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게 된 이 소식,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갑질 문제로 자리하고 말았다.

경비노동자 4명 중 1명, ‘비인격적인 대우 받은 적 있다.’

2019년 작성된 전국 아파트 경비 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경비 노동자 4명 중 1명은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근무 환경에 대한 입주민의 이해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입주민 3명 중 1명만이 경비 노동자에 대한 법적 휴게시간 보장 제도를 알고 있었다.

올해 초 있었던 경비원 자살과 얼마 전 일어났던 입주자 대표의 관리사무소장 살해 사건까지. 믿을 수 없는 이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은 단순한 치욕을 주는 것 이상의 갑질과 횡포로, 우리나라 공동주택 노동자 인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어쩌면 이 수치가 작아 보일 수도, 이 사례가 유독 극단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을’에 대한 ‘갑’의 횡포 사건은 우리를 무뎌지게 만들기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이를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한 지붕 아래’ 팀이다.

아파트 공동체 문화 조성을 위한 프로젝트 ‘한 지붕 아래’

다섯 명의 대학생이 모인 ‘한 지붕 아래(이하 ‘한 지붕’)’ 팀은 아파트 내 갑질 문제와 더불어 개인주의 심화로 인해 발생하는 공동체 파편화 현상 개선을 개선하고 싶었다. <한 지붕 아래> 프로젝트는 무더위가 한창이던 7월부터 선선한 바람이 불던 10월까지, SK SUNNY 2020년 대전/충남지역 사회변화 챌린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약 3개월 동안 진행됐다.

사실 초기 기획은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갑질 문제 해결’이었다. 하지만 여러 차례 대상자들과 만나며 경비 노동자 외 환경미화원, 관리사무소 직원들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상자를 점차 확대해나갔다. 또한 대상자 고용에 생기는 피해를 우려해 ‘공동체 의식 고취 및 에티켓 문제 해결’로 방향을 바꾸며, 대상자의 니즈에 맞게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한 지붕 팀이 가장 먼저 주목한 곳은 바로 ‘엘리베이터’였다.
엘리베이터야말로, 모든 입주민과 노동자가 한 번쯤은 이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비대면으로, 가장 많이, 쉽게 콘텐츠를 노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안성맞춤이었다! 이렇게 기획된 것이 ‘엘사(엘리베이터는 사랑을 싣고)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상자들에게 한 지붕 아래 프로젝트 홍보와 참여 방법 안내 및 이벤트 공지를 전달했다.

엘사 프로그램과 더불어 운영된 프로그램이 하나 더 있다. 아파트 구성원들 간의 소통 활성화를 위한 ‘사랑의 우체국’이다. 사랑의 우체국은 각 동별 엘리베이터와 관리 직원들의 근무지에 설치된 붉은색 종이 우편함으로, 시기별로 테마를 정해 이들의 사연을 받았다. 또 평소 전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어 닿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기고됐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인 사연은 별도의 선별 작업을 거쳐 ‘대나무숲’이라는 게시판에 부착됐다.
사랑의 우체국이 다양한 목소리를 모았다면, 대나무숲은 이러한 목소리를 모두에게 들려주는 역할을 했다. 가시성을 높이기 위해 조금 특이하게도 일반적으로 쓰이는 평면 사각 게시판이 아닌, X배너 형태의 입간판 타입으로 제작했다. 아파트 내 유동 인구가 많은 세 곳에 설치되어 이곳을 오가는 입주민과 관리 직원 간의 소통을 도와주었다. 실제로 낮에 길을 가다 멈춰 서서, 혹은 자녀의 어린이집 하원 차량을 기다리며 게시판을 읽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나무숲’에는 쪽지만 걸리지 않았다.
아파트 노동자 및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우리 아파트 노동자를 소개합니다’ 코너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써니들이 직접 인터뷰해 작성한 세 장의 포트폴리오가 걸렸다. 경비 노동자와 환경 미화원,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소개와 이야기가 담겼다. 또한 공동체와 관련한 법 조항이나 상식을 다룬 퀴즈 코너도 운영해 <한 지붕 아래> 프로젝트의 기획 의도를 지속해서 알리려고 노력했다.

마지막으로, 미팅을 통해 알게 된 아파트의 직접적이고 세부적인 고충을 다뤘다.

아파트 내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에티켓 문제를 어떻게 하면 신선하게 다가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한 지붕 팀은 세 가지 측면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그 첫 단계로, ‘아이들 그림 전시회’를 개최했다.
먼저 아파트 인근 미술학원 두 곳과 협업해 ‘아파트 공동체 구성원’ 및 ‘공동체 에티켓’을 주제로 한 아이들 그림을 받았다. 그리곤 선선한 바람이 불어 기분 좋은 날씨가 이어졌던 10월, 아파트 중앙 정원에서 각각의 주제로 두 차례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는 입주민과 노동자 모두에게 가장 좋은 평을 받은 프로그램이었다.

다음 단계로는 직접적인 실천을 유도할 수 있도록 아파트 동별 출입구마다 넛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참여형 에티켓 캠페인 포스터를 부착했다. 공동체 에티켓이 잘 지켜진 모습과 그렇지 않은 모습을 둘 다 담은 일러스트를 제시하고 ‘당신은 어떤 이웃입니까?’라는 물음표를 던졌다. 포스터 옆에는 스티커를 두고, 입주민이 직접 자신의 모습, 그리고 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아파트 공동체의 모습에 투표하도록 했다. 당연한 결과겠지만 바람직한 공동체 모습이 담긴 일러스트에 많은 스티커가 붙었다.
그럼에도 스스로가 직접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짧게나마 고민해보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캠페인의 의의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환경미화원의 고충이었던 쓰레기 분리수거 문제를 다루었다.
‘아파트 분리수거, 이것만은 꼭!’ 체크리스트 형식의 포스터를 제작해 단지 내 분리수거장마다 부착하여 보다 친절하고 자세한 분리수거 방법을 안내하고 독려했다.

우리는 모두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습니다

약 3개월간의 프로젝트를 마친 이들은 지난 10월 31일 개최된 성과 공유회에서 특별상을 받는 보람을 얻었다. 12월인 지금은, <한 지붕 아래> 프로젝트 매뉴얼화 작업을 하고 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배웠던 점과 부족했던 점을 보완하고, 보다 보편적이고 탄탄한 구성을 위해 전문기관에 자문과 검수 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내년 1월 초에는 따끈따끈하게 인쇄된 매뉴얼이 탄생할 예정이라고 한다.
여름과 가을, 이제는 겨울까지 함께 맞이하게 된 이들에게 남은 활동을 응원한다.

이제 우리나라 국민 둘 중 하나는 아파트에 살 정도로,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는 거주 유형에 있어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는 시대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에 있어 ‘공동체 문화 형성’은 점차 더 중요해질 것이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히고 이미 굳어진 현대 사회의 문화라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 문제 해결은 속도보다 꾸준히 하나의 방향과 가치를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 지붕 아래> 프로젝트가 다른 공동체에도 확산된다면, 우리는 좀 더 멋진 사회에서 함께 어우러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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