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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좋아하세요?

다들 잘 지내나요?

‘다들 잘 지내고 있죠?’ 이런 안부 인사를 화면 속에서 나누는 세상이 되었다. 전에는 형식적으로 던진 적 많던 인사말인데 이제는 정말 궁금해서 먼저 물어보곤 한다. 밖에 나갈 수 없어 화면 외에는 사람을 만날 일도 없게 되니 이 질문에 진심이 되어 버렸다. SNS에 올리는, 어쩌면 꾸며진 일상이나 이미 지나버린 과거로의 추억 여행 말고 진짜로 무얼 하고 지내는지, 요즘 가장 즐겨 하는 게 뭔지 등 사소한 것이 궁금해졌다. 그러나 선뜻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그럴듯한 뭔가를 말해야 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이십 대 중반이 다가오니 이제는 어떤 큰 시험 준비 혹은 인턴을 하고 있거나 학교라도 열심히 다녀서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어야 할 것만 같다.

내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그래.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떻게 답해야 할지. 이 질문에 가장 답하기 어려웠던 때가 작년 휴학생 신분이었을 때다. 학교라도 다니면 할 말이 있으련만, 용돈 벌이용 아르바이트와 뒤늦게 배우고 싶어진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게 내 루틴의 전부였기 때문이라. 가끔가다 있는 일정도 죄다 친구들을 만나 노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뭐 그리 기죽어 있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요즘 뭐에 관심이 생겨서 뭘 하는데, 그게 어떻더라.’ 정도로만 답했어도, 그리고 충분히 자신감을 가졌어도 됐을 텐데 싶다. 나의 근황을 묻는 말에 내가 좋아하고 또 즐기는 것을 담아 대답하는 것만큼 멋지고 기분 좋은 일이 또 있을까.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지 않더라도 은은하게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한 마디를 통해 나를 빛나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다들 잘 지내고 있죠? 뭐하면서 지내고 있나요?

‘아무튼’, 나를 읽어요

한편으론 먼저 걸어온 안부 인사에 ‘그냥 있어~ 너는 잘 지내?’라고 되묻는 것은 괜히 그런 건 아니라 생각한다. 나처럼 부끄러움에 말 못 하는 게 아니라 근래 들어 좋아하는 게 하나도 없거나 정말 이렇다 할 거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과연, 정말 그럴까?’ 다시금 생각해보기 바란다. 이 별거 아닌 질문에 집착하는 이유는 건조한 일상 속에서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짬짬이 누리면서 살았으면 해서다. 거창해 보이지만 별것 없다. 지금 내가 소개할 책도 그렇다. 오로지 단 한 가지 소재에 대한 단편집이다. 그리고 정말 단순하게도 그게 책의 제목이다. 바로 『아무튼』 시리즈다. 공식 인스타그램의 소개말을 빌리자면, ‘‘아무튼’은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가 함께 펴내는 문고’로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한 가지를 애틋하게 혹은 경쾌하게 담은 에세이’다. 표지도 각각의 주제에 맞게 개성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핸드백에도 넣을 수 있는 작은 크기로 인쇄돼서 요즈음으로 치면 롱패딩의 깊숙한 주머니도 문제없이 쑥 들어간다. 이렇게 출판된 책이 2020년 12월 18일 기준, 벌써 자그마치 37권이나 된다. 지금까지 나온 주제를 다 읊어보자면 이렇다.

피트니스, 서재, 게스트하우스, 쇼핑, 망원동, 잡지, 계속, 스웨터, 택시, 스릴러, 방콕, 외국어, 로드무비, 딱따구리, 트위터, 발레, 비건, 양말, 식물, 술, 요가, 문구, 예능, 기타, 떡볶이, 하루키, 순정만화, 메모, 산, 여름, 스윙, 언니, 달리기, 연필, 반려병, 목욕탕, 뜨개

주제가 정말 다양한 데다가 내용도 크게 심오하지 않아 가볍게 읽기 좋다. 글자 크기도 큼직큼직하고 술술 읽히는 편이다. 내가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것은 취향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어서다. 일상에서 그냥 지나칠 수 있을 대상에 자신만의 애정을 담뿍 담아낸다. 게다가 나랑 겹치는 취향이 종종 있어 골라 읽기 좋고 관심 없던 것에 시선을 가게 한다.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마저 잃어버리거나 피곤하단 이유로 지나치고 마는데, 이들은 한 대상에 대한 온갖 경험담과 함께 그때 든 생각과 감정을 꼬박꼬박 기록함으로써 좋아하는 것에 대해 또 한 번 곱씹는다. 아무튼, 읽게 된다.

내 취향은 이렇습니다! 아무튼 00

택시, 트위터, 비건, 식물, 떡볶이, 계속, 예능, 잡지, 목욕탕.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아무튼 시리즈 목록이다. 37권이 나온 것에 비하면 아직 1/3도 채 안 되는 수준이지만 적어도 이 9권만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밑줄 그어가며 읽었다.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이다. 가장 최근에 읽은 ‘목욕탕’은 출시되자마자 읽고 싶어 동네 서점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아무튼, 택시』
가장 처음 접한 아무튼 시리즈는 ‘택시’였다. 처음부터 ‘아 나는 택시에 관심이 많으니까 읽어봐야지!’하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책을 자주 읽는 언니의 블로그에서 알게 된 평범한 경로였다. 사실 나에게 택시는 정말 늦을 것 같을 때만 큰맘 먹고 타는 것이고, 할증 시간대가 언제인지 아는 게 전부였지만 금방 몰입해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작가가 택시를 자주 이용하기도 했지만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하진 않는다. 택시 하나로 이만큼의 분량을 써낼 수 있다는 것, 가벼운 이야기와 사회의 무거운 이면까지 짚어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이 작품을 시작으로 나는 아무튼 시리즈에 홀랑 빠졌다.

『아무튼, 식물』
초록색을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정갈한 푸른 이파리가 인상적인 아무튼 식물을 집어 들었다. 식물에 대한 애정이 활자 하나하나에 꾹꾹 눌러 담긴 책이었다. 당시 나는 식물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편도 아니었고 업무차 식물을 가꿨던지라 달가운 존재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식물의 세계에 들어서면 누구도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는 작가의 말을 어느 정도 알 것만 같다. 사랑으로 가꿔내는 노동이 어떤 것인지도 말이다.

『아무튼, 목욕탕』
앞서 소개한 두 책이 내게 새로운 관심사를 소개해 줬다면, 원래도 내 취향이었던 것들도 있다. 떡볶이, 예능, 잡지, 목욕탕이 그러하다. 그렇지만 요즘 가장 그리운 걸 꼽는다면 역시나 목욕탕이다. 하루아침 새 마스크가 필수가 되고 두문불출하는 사람이 멋진 어른의 표본이 된 시대에 살게 되면서 생이별하게 된 그곳. 어쩜 이 타이밍에 이 책이 나왔는지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목욕탕에 못 간 지 근 1년이 다 됐지만 『아무튼 목욕탕』을 읽으면 목욕탕 천장에서 바닥으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열탕의 뜨거운 물 온도, 사우나 특유의 냄새, 때 밀기 싫어 엉엉 우는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그대로 느껴지는 듯하다. 고작 책 한 권 읽었다고 느껴지는 노곤함에 목욕탕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정까지 더해져, 목욕탕에 대한 내 자세도 더 벅차오르고 만다.

좋아하지만 맘 편히 즐기지 못했던 것을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양껏 들이마시고 더 깊게 좋아하게 될 수 있다는 게 이 시리즈의 매력이다. 원고를 쓰면서 결국 『아무튼 여름』과 『아무튼 언니』를 또 주문했다. 내 취향과 관심사를 위한 작은 투자다. 한 해가 마무리되는 이 시점에서 나를 위한 소소한 선물로 취향 한 권 준비해보는 건 어떨까, ‘아무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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