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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류를 위한 에코허세, 텀블러

텀블텀블 텀블러

지갑, 파우치, 노트, 다이어리만으로도 충분히 무거운 내 가방에 언제부터인가 스테인레스 재질의 물체가 자리를 잡았다. 제조국 중국, 재질은 스테인레스와 고무, 가로 7cm 세로 18cm의 원통형. 텀블텀블 굴러다닌다 하여 붙여진 이름은 텀블러. 고대 유목민들은 원추형의 쇠뿔에 술을 담아 마셨는데, 밑이 뾰족해 바닥에 세울 수가 없었다. 그 점을 보완하여 밑이 평평한 원통형 디자인을 만들었고, 지금의 텀블러가 되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재질은 물론이요 텀블러를 사용하는 사람도, 용도도, 장소도 바뀌었다. 수업을 들으러 강의실에 가면, 책상 위에 올려진 텀블러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 때 ‘왼 손에는 전공책, 오른 손에는 테이크아웃 커피잔’이 여대생의 전유물이었다면, 이제는 텀블러다. 하도 된장녀라 욕을 먹어 더 이상 카페 종이컵은 거부하게 된 걸까, 아니면 환경 보호에 1%라도 기여하고자 전용컵을 들게 된 것일까. 웬만한 브랜드 텀블러 가격이 3만원을 호가하고 외국 제품은 터무니 없는 가격을 부름에도 없어서 못 판다는, 이 기이한 현상이 궁금해졌다.

무조건 예뻐야 해

우리나라 한 해 평균 일인당 종이컵 소비량은 240개. 대학생으로 치면, 방학 빼고 학교 다니는 내내 하루 한 개는 쓴다는 말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종이컵 소비량을 줄이고자 개인컵 들고 다니기 운동도 일어났고, 어릴 적 기억에 대학생 언니 오빠들 배낭에 등산용 스뎅컵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모습도 생각난다. 그러나, 일찍 끝났다. 환경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해서였을까? 아니다. 원인은 하나, 예쁘지 않아서이다.

민무늬토기를 연상시키는 밋밋한 스뎅컵에 질린 언니오빠들은, 다시 종이컵을 들었다. 그리고 커피전문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카페의 로고가 새겨진 종이컵을 들었다. 된장녀라 돌을 맞자 이제는 재질을 텀블러로 바꾼 것 뿐이다.

사실 텀블러가 주는 장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구입하자마자 음료쿠폰을 주는데, 이 쿠폰이면 평소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녹차프라프치노 벤티사이즈에 자바칩은 통으로 넣어주세요”를 주문할 수 있다. 어디서든 물을 마실 수 있고, 위생적이기도 하다. 카페에서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달라 요청하면 깨끗하게 씻어주고, 300원 할인도 해준다(자사 텀블러가 아니면 할인해 주지 않는 치사한 카페도 있지만). 최근 나오고 있는 인스턴트 원두커피를, 텀블러와 함께 카운터에 갖고 가면 뜨거운 물을 담아주는 곳도 있다. 1000원이 채 되지 않는 돈으로 카페놀이를 즐길 수 있다니. 더 이상의 장점도 없다.

게다가, 예쁘다. 브랜드 카페의 로고가 새겨진 텀블러는 이미 예쁘다. 시티별, 시즌별 한정 텀블러는 정말, 없어서 못 판다.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제품은 유학간 친구를 졸라서 구할 정도로 예쁘다. 이렇게 예쁜 텀블러가 있어야, 환경보호 할 기분도 나는 거 아닐까. 물론 마트에 가면 더 우수한 보온력과 밀페력을 자랑하는 텀블러가 저렴한 가격에 팔리고 있지만, 웃돈을 더 주고서라도 로고 박힌 텀블러를 갖고 싶은건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허영심이려니.


뻥치지 맙시다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는 이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은 “환경보호에 도움이 되잖아요.”
뻥치지 말자.
본토간지 줄줄 나는 스뎅 텀블러에, 비록 300원짜리 커피믹스를 탈탈 털어 넣고, 정수기 뜨거운 물을 받더라도. 강의실로 들어섰을 때 어디선가 느껴지는 질투 어린, 호기심 어린 시선. 내 앞에 앉은 어느 여학생의 벚꽃잎이 새겨진 도쿄 한정 시티 텀블러를 볼 때 느껴지는 동지애. 이런 것들이 없다면, 어깨가 비뚤어질 정도로 무거운 가방에 텀블러 하나 더 넣을 이유가 없다.
자신 있게 말하자. “예뻐서 샀어요. 집에 가면 색깔별로, 시티별로 사 모은 텀블러가 4개쯤 더 있답니다. 그치만 환경보호에도 도움이 되니, 영 뻘 짓은 아닌셈이죠.”

비난의 돌을 던지려는 사람에게는, 이 말을 들려주시길.
대중은 상품과 상품 사이의 ‘차이’를 소비한다. 중요한 것은 사용가치가 아니라 기호가치다. 생산과 소비의 물질적 모델은 산업사회에 속하는 것. 그것에 대한 정보사회의 모델은 비물질화 혹은 재물질화, 다시 말해 물질이 아닌 브랜드 그 자체, 혹은 물질의 디자인과 결합된 브랜드이다. (크로스 / 진중권·정재승)

브랜드의 이미지를 즐기고 소비하는 동시에 대의까지 생각하는, 신 인류를 위한 에코 허세, 텀블러. 자신있게 들자. 이건 분명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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